교육공간 오름이란?

 

학교 아닌 공간

 

처음 학교 밖 청소년들과 교육 활동을 시작할 때 이 모임에 ‘학교’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교’라는 이름의 공동체가 공동체성과 배움의 의미를 모두 상실해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던 까닭이 컸습니다. 학교는 청소년에게 견뎌야하는 곳이고, 견디고 난 후의 성인들에게는 어렵게 견뎠던 곳으로 기억되는 공간으로 여겨졌습니다. 배우고 가르치며 함께 공부하는 일 자체가 즐거운 일임을 다시 강조하기 위해서는 ‘학교’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배움의 공동체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장소성을 강조한 이름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빈 곳에서 우리는 잠시 서로 만나 영향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정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만날 것이지만 이 만남이 앞으로 지속되는 삶 속에 깊게 관여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이 만남에 너무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이 만남의 바깥을 상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공교육이 걸어왔던 한계에 다시 봉착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라는 교육기관에 대해 실제로는 신뢰하지 않으면서 너무 많은 의미와 책임을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이 부여했기 때문에 공교육에서 진정한 만남은 점점 더 상실되어갔습니다. 교사들은 자신의 것을 최대한 드러내기 보다는 전달을 위해 기술을 쓰고, 학생들은 교사 개인의 인격과 무관하게 배움이 가능한 것처럼 인식합니다. 어떤 교사를 만나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어졌기 때문에 교사와 학생 사이의 인격적 만남은 불가능해졌습니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고유성이 상실됨에도 여전히 체계화된 교육만 중요했기 때문에 교실은 붕괴해 갔다고 생각합니다.

 

오름은 바깥을 늘 의식하기에 개별 만남에 더욱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학생과 교사의 성장은 ‘오름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한 수준의 교과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교사는 지금 내가 가장 필요로 하다고 생각하는 최대의 방법을 가지고 개별 학생들을 만납니다. 교과서라고 하는 모두를 위하지만 ‘나’를 위하지는 않는 어정한 방법이 필요 없습니다. 오름의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맥락적 상황을 간직한 채 잠시 만나 만남의 의미를 갱신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해진 안일한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름은 한시적으로 최대한 만날 뿐 만남의 허울일 뿐인 체계를 과하게 고민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름이 가지는 대안성의 요체입니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직접적 소통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치우는 빈 곳. 오름에서는 이곳을 졸업하면 무엇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 누구도 어디를 지나와서 무엇이 될 수는 없습니다. 배움의 공간은 자격과 위력을 갖추는 곳이 아니라 내부의 변화를 위한 공간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름은 이 내부의 변화를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오름이 학교라는 공식명칭을 거부하고, 교육공간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교육의 대안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오름의 교과목 구성

 

오름은 인문학과 예술 과목을 중심으로 가르칩니다. 인문학은 글로 인간이 과거에 가졌던 정신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인간들이 시대나 국가 혹은 개인의 고유성에 따라 어떤 생각의 빛깔을 지녔으며, 이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골몰을 했는지 더듬어 보는 작업이 인문학 교육입니다. 누구나 생각을 합니다만 자신의 생각을 근거에 따라 정립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습니다. 생각은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지만 내부의 지적 능동성을 확립하지 않으면 자신만의 생각의 규칙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규칙을 위한 끊임없는 실험을 거쳐야 비로소 고유한 생각의 결이 만들어집니다. 교육공간 오름은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의 결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인문학 교육의 재료는 주로 글로 쓰여진 것입니다. 오름에서는 학생들과 되도록 주어진 자료를 그대로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교사와 같이 자료가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를 애써 읽어내는 연습을 합니다. 요약본이나 서지사항을 암기하는 공부가 아닌 느린 호흡으로 책의 의미 속에 젖어들기를 원합니다.

 

예술과목은 설명하기 보다는 익혀야 하고, 또 익힌 것을 바탕으로 얼마간 창조하는 작업을 반복합니다. 음악, 연극, 영화, 그림, 공예 작업을 통해 다양한 창작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공연합니다. 함께하는 밴드 합주와 연극 공연, 영화 만들기 등은 가장 좋은 공동체 교육입니다.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해서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하는 경험은 갈등과 갈등을 수습하는 과정 전체를 체험하는 과정입니다.

 

또 창작물을 밖으로 보여주는 것은 완성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하는 과정입니다. 작업의 결과물이 발생하는 것은 그 자체로 기쁨입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늘 좌절이고 실망이기도 합니다. 둘 모두를 체험하는 일이 예술수업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결과물은 여지 없이 창작자의 한계이자 가능성의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교육공간 오름은 많은 밴드 공연과 전시회 음반발표 등을 진행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오름의 학부모, 후원회원등의 많은 지지를 얻어왔습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 속에서 오름이 따뜻한 환대를 얻는 과정이었습니다. 긍정적인 시선을 먹고 자라는 학생들이 앞으로의 더 큰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름의 교사들

 

오름은 오름의 교사들이 교사라는 단일한 직업 정체성 안에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살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변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게다가 그 변화가 일정한 방향성을 가질 때 비로소 고루하지 않게 됩니다. 청소년기를 지나왔고 어떤 분야에 일정 정도 이상의 능력을 지닌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계속된 발전 방향 없이는 쉽게 고루해집니다. 머물러 있을 수 없기에 끊임없이 연구해야 하고, 익혀야 하고, 창조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에너지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달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름의 교사들은 교사 이자 연구자, 저술가, 음악가, 무예가, 영화감독, 배우 등등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대학 교수의 경우 대부분의 교수들에게 이런 종류의 두 정체성을 명백히 요구합니다. 그러나 중등 교사에게는 오직 교사로서의 정체성만을 더 강하게 요구합니다.

 

그 원인은 중등교사에게 일반적으로 수업의 구성권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발전된 지식과 정보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완성된 체계에서 전달만을 해야 하는 과정에서 교사 개인은 오직 교수법을 연구할 뿐 교육의 내용에 대한 진전을 필요로 하지 않게됩니다.

 

교육공간 오름의 교육내용 대부분은 교사들에게 일임되어 있습니다. 교사들 간에 끊임없이 대화하고, 함께 고민하지만 오직 개별 과목의 교사들에게 구체적 내용과 방향성 모두 일임되어 있습니다. 교사들은 매번 새롭게 수업을 구성해야 할 책임을 집니다. 그리고 그 구성을 위해 부단히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부담을 지게 됩니다. 계속해서 자기 분야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자기 분야를 좋아하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많은 영감을 구체적으로 줄 수 있습니다.
 

교육기간 및 무학년제 교육

 

오름은 학생들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입학 시험도 일정 자격도 없습니다. 학부모님과 학생들이 오름을 선택하면 됩니다. 평일 낮에 진행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공교육의 학교에 동시에 다닐 수 없으며, 14~19세의 청소년에 교육과정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참고하여 선택하길 바랄 뿐입니다.

 

10명 내외의 학생들이 다니는 공간이고, 오름에 머무르는 기간도 다릅니다. 길게는 3년씩 짧게는 한 학기만 다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생들 사이의 공부에 대한 관심과 준비 상태가 모두 차이가 납니다. 그런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꼭 나이나 학년과 비례하여 학생간의 차이를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차이가 나는 학생들이 함께 다니는 것에 대해 특별한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다양한 연령의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너무 많은 인원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고, 일괄적인 진도나 동일한 평가 기준이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학생들의 상황을 진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험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전체 등위를 구분하기 위한 평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상황에 맞추기 위해 필요하면 더 개별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추가로 진행합니다.

 

 

불안을 매개로 교육하지 않습니다

 

 

청소년 시기의 학생들은 가능성이 큰 만큼 불안하기도 합니다. 청소년 시기에 갖는 불안감은 얼마간 자연스러운 일이고, 이 불안이 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은 너무 비대하게 불안을 조장하고, 불안에 짓눌리게 하는 교육을 자행했습니다. 교육공간 오름은 불안을 매개로 교육하지 않습니다. 불안이 이외에 다른 동기부여 방법을 찾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찾은 가장 좋은 동기부여는 관계의 형성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말에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고 그 사람으로 부터 무엇을 배웁니다. 호의와 환대 속에서 피어나는 배움만이 결국은 자신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육은 적대적 관계가 행하는 거래가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겨우 하는 공부는 한시적인 영향관계만을 형성시킬 수 있을 뿐입니다.

 

오름은 공부하고 익히고 성장하는 일들을 소중하게 여기지만 별도로 입시를 준비하지는 않습니다. 오름에서 하는 글 읽고 생각하는 일이 혹 입시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입시라는 단기 목표를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그 속에서 시험문제를 반복하는 일을 특별히 수행하지는 않습니다.